이번 주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모두 인공지능의 개발 및 응용에 관한 연구를 다루었음.
AI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들 연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을 것임. 이들은 모두 남성이며, 그들의 연구는 너무 복잡해서 여기서 깊이 들어가기는 어려움.
한 기자가 위원회가 후보자 심사 시 AI와의 연관성을 고려했는지 질문했을 때, 화학 위원회 한 위원은 그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순전히 과학에 기반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음. (정치나 PR이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coughbarackobama* *cough coughhenrykissinger*)
AI 관련 상을 연달아 수상한 것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수상자 중 두 명이 그들이 풀어놓은 기술의 미래 응용에 대해 근본적으로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임.
한쪽에는 AI의 선구자인 힌튼이 있음.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 구글에서 퇴사하고 기술의 존재적 위험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 그는 CNN의 제이크 테이퍼에게 초인적 지능이 결국 사람들을 조종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음.
반대편에는 AI의 열렬한 지지자인 하사비스가 있음. 그는 구글의 AI 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인간을 초월하는 AI의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낙관론자'라고 자신을 묘사함. 하지만 그는 힌튼의 비관론과는 정반대의 입장임.
하사비스는 2월 뉴욕타임스의 하드 포크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과학 소설을 언급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음. (이건 부유한 사람들, 주로 학문적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리콘밸리의 거품 같은 대답임.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단순한 설계 오류라고 생각하는 건 좀 무리임.)
어쨌든, 노벨상이 이러한 AI 선구자들을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처음 보기에는 노벨 위원회가 빅테크의 AI 쿨에이드를 마신 것처럼 보일 수 있음. 하지만 아틀란틱의 마테오 웡이 지적했듯이, 노벨 위원회의 상 수여 방식은 신선하게 실용적이었음.
생성적 AI를 언급하면서도, 아무도 ChatGPT나 제미니 같은 소비자 지향 AI 도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음. '이 상은 다가올 과학 소설적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에 대한 예측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며, AI가 이미 세상을 변화시킨 모든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웡은 썼음.
비슷하게, 수요일 화학상을 발표하면서 위원회는 아미노산 서열과 구조 생화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음. 과학자 패널이 이야기한 것은 AI가 가능하게 한 완벽하고 질병 없는 미래가 아님. 그들은 AI를 연구자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루하고 기술적인 도구로 이야기했음.
이건 아마도 기술 경영자들이 투자자들에게 pitch하는 것보다 더 매력적이고, 아마도 덜 수익성 있는 이야기일 것임.